Thursday, 31 July 2014

공정무역은 무엇일까?



공정무역이란?

공정무역은 경제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불공정한 무역으로 발생하는 구조적인 빈곤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세계적인 시민운동이자 사업입니다. 공정무역은 상품의 생산과 유통소비 과정에 참여하는 이해 관계자에게 그 이익이 보다 공평하게 배분되는 합리적인 공급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개발도상국의 생산자들이 환경에 부담을 덜 주고 생산한 믿을 수 있는 제품에 대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그들의 삶과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람도 살리고 지구 환경도 살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깨어 있는 소비가 이 세상을 보다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하도록 만들어 갑니다.



공정무역의 목표

공정무역은 기본적으로 기존 무역의 실패에 대한 반응입니다. 이는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빈곤한 나라 사람들에게 지속가능한 생계와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입니다.

나아가서 지속가능하고 형평성 있는 무역관계, 생산자들의 역량 강화와 능력 신장, 소비자 인식 개선과 옹호 활동에도 중점을 둡니다.

첫째, 무역을 통한 극심한 빈곤의 완화.

둘째, 소규모 농부와 농장 노동자들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

셋째, 세계무역 조건 개선과 정의를 위한 폭넓은 캠페인 전개.


공정무역의 목적

공정무역의 기본목적은 개발도상국의 불리한 생산자들에게 가난으로 부터 벗어날 기회를 주기 위해 소비자들의 시장 접근성을 착취가 아닌 생산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에서 창출하는 것이다. 또 생산자들이 국제무역을 통해 자신들의 사업과 더 넓게는 지역사회를 개발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소비자에게는 윤리적이고 현명한 소비를 통해 생산자의 자립을 돕고 기업에게는 사회적 책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정무역의 정의

"공정 무역은 대화와 투명성, 존중에 바탕을 둔 무역 파트너십으로서 보다 평등한 국제무역을 추구한다. 특히 남반구의 소외된 생산자들과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무역 조건을 제공하고 그들의 불리한 여건과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한다. 소비자들로부터 지지받는 공정무역 단체들은 생산자 지원, 인지 강화, 그리고 국제무역 규칙과 관행의 변화를 위한 캠페인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출처) 한국 공정 무역 연합




1940~50년대 미국과 영구에서 바늘 제품과 수공예품을 거래한 것으로 소박하게 시작되어 1989년에는 국제공정무역연합(IFAT, 현 WFTO)이 설립되었고 1997년에는 세계공정무역 상표기구(FLO)가 발족했다. 2002년에는 제1회 세계공정무역의 날이 시행되었고 이듬해인 2003년에는 아름다운 가게가 아시아지역 공예품을 판매한 것을 필두로 우리나라의 공정무역 역사가 열렸다.

FAIRTRADE INTERNATIONAL의 2012-13 리포트에 따르면 현재 공정무역은 세계 70여개 국가에서 130만 이상의 농민과 노동자가 참여하고 있다. 2012년 전세계의 FLO인증 제품 판매량은 48억237만4천746유로이며 우리나라는 약 198만9천631유로였다. 공정무역 판매 대표 품목으로는 꽃과 식물,바나나,설탕 등이 있다. 전 세계에는 1149개 생산자 조직이 있으며 이는 2011년보다 16% 증가한 것이다.

초콜릿과 커피의 달콤 쌉쌀한 맛 뒤에 숨겨진 슬픈 현실을 알게 된 소비자들이 늘면서 국내 공정무역 시장 규모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아이쿱 생협, 아름다운가게 등 공정무역 상품을 취급하는 7개 기관에 따르면 공정무역 매출 규모는 2009년 54억원, 2010년 76억원, 2011년 100억원, 2012년 130억원으로 추산된다. 공정무역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단체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처럼 공정무역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 경제규모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2012년 아름다운가게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공정무역에 대해 모른다’고 답한 비율이 65.3%에 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무역 관련 단체들은 홍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세계 공정무역의 날’이었던 지난 5월 10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비영리 재단법인 아름다운커피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공정무역과 공정무역 제품을 홍보하고, 커피와 카카오 생산지의 현실을 알리는 교육을 실시했다. 황희성 옹호사업팀 팀장은 “한국에서 공정무역에 대한 인지도는 비교적 높아졌지만, 아직 대중의 인식과 참여도는 높지 않은 수준”이라며 “이번 캠페인으로 공정무역 커피와 초콜릿이 생산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함께 생각해보고 일상적 소비를 통해 공정무역 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Wednesday, 16 July 2014

Jenny Pong Seow Chin 기사 News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을 찾는 캠페인이 Medinova AG, Switzerland 사에 의해 열렸습니다.
CSR 프로젝트인 Hiruscar Beautiful Keisha Somasundram Petrus and Dr Ahmad Anas Abdul Majid 그리고 Jenny Pong Seow Chin에게 그들과 그들의 이야기에게 상을 수여했습니다
각각의 수상자들은 상금으로 8000링깃을 지원받습니다.
캠페인 동안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의사 약사 그리고 편집장에 의해 추천되었고 심사위원이 그들중 캠페인의 목적에 맞는, 뜻을 나타내는 3명을 뽑았습니다.
일반의약품 마케팅 담당자임 Pamela Tan 우리는 인생을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해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상자들은 장애인이지만 자신의 도전의 증거이자 그들이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그들의 이야기를 청중들과 나눴습니다.
현재 48살인 Jenny Pong 18살에 감염으로 인해 그녀의 다리를 잘라내야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앉지도 못하고 그녀의 동생이 만들어준 나무 손수레로 몸을 움직입니다. 이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집안일을 하고 씻고 요리를 합니다.
동기부여 연설가로써 Pong 사람들에게 장애가 다리를 가져갔을지언정 나의 웃음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며 희망을 전합니다.

Tuesday, 15 July 2014

Jenny Pong Seow Chin 소개 Introduction

1966년에 태어난 Jenny Pong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인생에서 헤쳐나간 사람입니다

그녀는 6명의 형제와 함께 Ipoh라는 도시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습니다. Jenny 그의 가족들은     그들 스스로 채소를 심고 닭을 길렀습니다그들은 스스로 집을 지었고 10년전 까지만 해도 전기와           수돗물이 없는 등의 집에 대한 끊임없이 수리가 필요했습니다.

7살쯤, Jenny 이미 그녀의 엄마를 도와 그들의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채소를 내다 팔았습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그녀의 엄마처럼 12살에 학교를 그만두었고, 10대때에는 가족을 위한 먹거리를   사고 적합한 조건으로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역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노래방에서 일했습니다.

18살이라는 매우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일년이 채 되지 않았을때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좋은 소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것도 잠시 Jenny는 유산을 하게 되었고 태아 제거 수술을 위해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출산 후의 감염 바이러스를 얻게 된 Jenny는 어 느날 화장실에 가던 도중 쓰러졌습니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고 Jenny는 2년 만에 의식을 되 찾았습니다.

 하지만 깨어난 후에도 그녀는 합병증에 시달렸고, 팔과 다리는 마비가 되어 2달 동안 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였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기간 동안 Jenny는 남편이 자신을 보러 와주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습니다.

강한 의지가 있었던 Jenny의 엄마는 이 힘든 시간 동안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Jenny를 

보살폈고, Jenny에서 고무 공을 쥐는 연습을 꾸준히 시킨 덕분에 그녀는 팔과 손을 조금 움직 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양동이로 물을 끌어 올리는 운동을 하며 감각을 찾으려고 했지만, 여전히 다리의 감각은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다리의 감각이 돌아 오지 않아서 그녀는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팔을 이용하여 이곳 저곳으로 움직 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Jenny가 움직일 때 그녀의 다리를 끌기 때문에 그 모습에 인어공주라는 별명도 붙여주었습니다.

 이후 25 동안 똑바로 앉아 있던 적이 한번도 없던 Jenny 그녀의 11 동생이 만들어준 나무 손수레를 이용하여 이동하였습니다.나무 손수레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것은 매우 힘들었고 Jenny 몸과 팔에 크고 작은 상처들을 만들었습니다계속되는 주사와 병원에서의 수혈 그리고 수없이 많은 수술들 역시 Jenny 상처와 장애에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신체적인 아픔과 남편에 대한 슬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른 세상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했습니다. Jenny 어떻게 분노와 우울함을 극복하는지를 깨달았고 그녀의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지원 덕에 자신감과 자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자급자족하고자 하는 의지는 점점 커졌고 Jenny는 eHomemakers의 eco-basket 프로젝트를 선호했습니다.  바구니를 만들기위한 훈련에 참가하였지만 바구니 제작에는 많은 팔의 힘을 요구했고 그것은 Jenny에게 힘들었습니다. eHomemakers의 컴퓨터 훈련은 또한 오랜 시간 컴퓨터 화면을 보기 때문에 그녀에게 어지러움증을 유발 하였습니다.

병원비용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다른 일을 찾았고 Jenny 장례식때 고인을 위한 신발을 제작하며 수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20년동안 신발을 제작 하며 최근에의 임금이  0.12 RM에서 0.18RM 으로 올랐습니다. 이러한 작은 증가가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이것은 Jenny에게는 큰 것이었습니다. 작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 항상 감사해합니다. 

현재 그녀는 말레이시아 Ipoh지역의 장애 시민 연합인 The Hope Era 부대표로 역임하며 100여명이 넘는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기 위해 회의를 준비하고 행사를  계획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Jenny는 eHomemakers의 설립자인 Chong Sheau Ching과 알고 지내며 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Sheau Ching은 Jenny의 집을 위한 가구와 치료비용을 위해 eH 네트워크를 통해 기금 모금을 하였고, 사람들은 젊은 시절부터 힘들고 어려운 일은 겪은 Jenny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기억이 그녀를 아프게 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남편을 찾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Jenny는 인생에서 많은 아픔과 슬픔을 겪었지만, 극복하고 이겨내어 지금까지도 가족을 부양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Jenny Pong의 페이스북) fff.re/jennypongf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