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에 태어난 Jenny Pong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인생에서 헤쳐나간 사람입니다.
그녀는 6명의 형제와 함께 Ipoh라는 도시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습니다. Jenny와 그의 가족들은 그들 스스로 채소를 심고 닭을 길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집을 지었고 10년전 까지만 해도 전기와 수돗물이 없는 등의 집에 대한 끊임없이 수리가 필요했습니다.
7살쯤, Jenny는 이미 그녀의 엄마를 도와 그들의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채소를 내다 팔았습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그녀의 엄마처럼 12살에 학교를 그만두었고, 10대때에는 가족을 위한 먹거리를 사고 적합한 조건으로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역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노래방에서 일했습니다.
18살이라는 매우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일년이 채 되지 않았을때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좋은 소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것도 잠시 Jenny는 유산을 하게 되었고 태아 제거 수술을 위해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출산 후의 감염 바이러스를 얻게 된 Jenny는 어 느날 화장실에 가던 도중 쓰러졌습니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고 Jenny는 2년 만에 의식을 되 찾았습니다.
하지만 깨어난 후에도 그녀는 합병증에 시달렸고, 팔과 다리는 마비가 되어 2달 동안 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였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기간 동안 Jenny는 남편이 자신을 보러 와주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습니다.
강한 의지가 있었던 Jenny의 엄마는 이 힘든 시간 동안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Jenny를
보살폈고, Jenny에서 고무 공을 쥐는 연습을 꾸준히 시킨 덕분에 그녀는 팔과 손을 조금 움직 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양동이로 물을 끌어 올리는 운동을 하며 감각을 찾으려고 했지만, 여전히 다리의 감각은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다리의 감각이 돌아 오지 않아서 그녀는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팔을 이용하여 이곳 저곳으로 움직 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Jenny가 움직일 때 그녀의 다리를 끌기 때문에 그 모습에 인어공주라는 별명도 붙여주었습니다.
그 이후 25년 동안 똑바로 앉아 있던 적이 한번도 없던 Jenny는 그녀의 11살 동생이 만들어준 나무 손수레를 이용하여 이동하였습니다.나무 손수레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것은 매우 힘들었고 Jenny 몸과 팔에 크고 작은 상처들을 만들었습니다. 계속되는 주사와 병원에서의 수혈 그리고 수없이 많은 수술들 역시 Jenny의 상처와 장애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신체적인 아픔과 남편에 대한 슬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른 세상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했습니다.
Jenny는 어떻게 분노와 우울함을 극복하는지를 깨달았고 그녀의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지원 덕에 자신감과 자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자급자족하고자 하는 의지는 점점 커졌고 Jenny는 eHomemakers의 eco-basket 프로젝트를 선호했습니다. 바구니를 만들기위한 훈련에 참가하였지만 바구니 제작에는 많은 팔의 힘을 요구했고 그것은 Jenny에게 힘들었습니다. eHomemakers의 컴퓨터 훈련은 또한 오랜 시간 컴퓨터 화면을 보기 때문에 그녀에게 어지러움증을 유발 하였습니다.
병원비용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다른 일을 찾았고 Jenny는 장례식때 고인을 위한 신발을 제작하며 수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20년동안 신발을 제작 하며 최근에의 임금이 0.12 RM에서 0.18RM 으로 올랐습니다. 이러한 작은 증가가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이것은 Jenny에게는 큰 것이었습니다. 작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 항상 감사해합니다.
현재 그녀는 말레이시아 Ipoh지역의 장애 시민 연합인 “The Hope Era”의 부대표로 역임하며 100여명이 넘는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기 위해 회의를 준비하고 행사를 계획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 그녀는 말레이시아 Ipoh지역의 장애 시민 연합인 “The Hope Era”의 부대표로 역임하며 100여명이 넘는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기 위해 회의를 준비하고 행사를 계획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Jenny는 eHomemakers의 설립자인 Chong Sheau Ching과 알고 지내며 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Sheau Ching은 Jenny의 집을 위한 가구와 치료비용을 위해 eH 네트워크를 통해 기금 모금을 하였고, 사람들은 젊은 시절부터 힘들고 어려운 일은 겪은 Jenny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기억이 그녀를 아프게 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남편을 찾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Jenny는 인생에서 많은 아픔과 슬픔을 겪었지만, 극복하고 이겨내어 지금까지도 가족을 부양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Jenny Pong의 페이스북) fff.re/jennypongf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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