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1 August 2012

Agila' Profile


바구니를 제조한지 1년정도  Agila 기본 바구니를 만들기 위해 배우고 있는 새로운 여성  하나입니다그녀는 2010 4월에 국제 금융 회사로부터 보조금 지원을 받는 바구니 제작 훈련 프로그램에 선정된 13명의 여성  하나입니다.
쿠알라룸푸르 변두리 Rumah Panjang 저소득 주민인 Agila  훈련 프로그램을 선호  사람들  하나였습니다. Rumah Panjang 일자형식의 공동 주택을 의미하고 정글과 시골에서 토착민과 유목민들이 주로 살았던 평범한 집을 말합니다공동 주택 내의 유닛들은 저마다 주민들을 위해 거실욕실주방휴게실 사용이 가능한 1인용 침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Agila  공동주택에서 자랐고 부모님과 5명의 형제자매그들의 배우자와 아이들과 함께 11명과 살고 있습니다정부가 공동 주택에 대한 요금을 매달 부과하고 있고 공동주택의 주민들을 그들이 사용한 전기세와 수도세에 대한 지불만 책임지고 있습니다.
Agila 15 때까지 교육을 받았습니다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수학이었고 선생님이 되는 것을 꿈꾸었습니다형제자매에서 장녀가 되었을  그녀는 형제자매들을 돌보기 위해서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교제해오던 남성과 20 초반에 결혼을 하였지만, 5년동안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이혼  5년이 지나고그녀는 고열을 앓아 치료를 받기 위해 공공 병원에 갔습니다그녀는  확정 진단과 함께 퇴원을 했고 6년전에는 손과 발의 감각을 잃었습니다신경 손상은 그녀가 평범하게 걷거나 똑바로 서있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도움을 받거나 가구 등의 사물을 잡아야지만 걸을  있었습니다물리치료와 침술요법을 시도했지만  치료들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비쌌습니다현재는 상태를 호전 시키기 위해 자연요법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Ayuvita약을 복용한 이후로, Agila 기운이 좋아지고 움직임이  자유로워  것을 느꼈습니다수입의 대부분을 약을 사는 곳에 사용하였고  비용은  달에 400RM (about $130 USD) 였습니다.
저렴한  외에 Agila 어떠한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살아가기 위해그녀는 바구니를 만들고준비하고, Nasi Lemak이라는 현지 음식을 길에서 판매합니다특별한 날이나 예배 때를 위한 꽃에 쓰이는 줄을 만듭니다바구니 주문이 매달 다르고 바구니를 만드는 Agila 기술을 완벽하기 때문에 확실한 수입을 위해서 다른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그녀의 형제자매들은 꾸준한 수입이 없고수입이 없을 때에 가족에게 돈이 쓰입니다. Agila 부모님은 정원사나 현지 골프장에서 청소부원을 하면서 집세고지서음식 등을 감당하기 돈을 법니다.
그녀의  하나가 완벽하게 움직일  없지만그녀는 여전히 13 종류의 바구니를 만듭니다건강상태와 자립적인 생각의 향상은 꽃에 쓰이는 줄을 만드는  같이 다른 기술을 얻도록 그녀를 북돋아 줍니다그녀의 가족들이 그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없는 동안에가족들은 바구니를 만들기 위한 잡지들을 보이고 Salaam Wanita 프로젝트에 참가 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Agila 훗날에는 평범하게 걷고 생활 하기 위한 직업을 얻을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Updated by Oh Ji Hye (08 August 2014)

Azlita' Profile



창의적이고 관찰력이 좋은 Azlita는 평평한 모양의 에코바스켓을 만드는 데 전문가입니다. Azlita는 겉보기에 내향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에코바스켓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금새 열정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녀는 에코바스켓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싶어합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에코바스켓을 디자인하는 것을 즐깁니다. 현재 그녀는 운전사인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제 여덟 살인 첫째 아이는 다운증후군 환우입니다. 첫째 아이는 특수 학교에 다니고 있어 보통학교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다행히도 Azlita의 남편은 그녀가 에코바스켓의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기부된 재활용 잡지를 수거하는 것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바쁠 때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습니다.

“에코바스켓을 만들 때면 마음이 평화로워 집니다. 저는 아이들이 잠 들면 바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에코바스켓을 만들며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합니다. 또한 가정 수입에 기여 할 수 있어서 매우 뜻 깊다고 말합니다.




Jasmine' Profile



Jasmine의 시작


 Jasmine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정신장애를 앓았었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화를 내곤 했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17살 때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쫓겨나 할머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세상에서 오직 할머니만이 그녀를 걱정해주고 보살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가족조차 낯선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다양한 직종에서 일했지만, 사회소통능력 부족으로 모두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했습니다. Jasmine이 루퍼스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그 결과 누워서 휴식을 취하지 않고서는 세시간 이상 일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주로 가정부 같은 임시직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고용주는 그녀가 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저임금으로 그녀를 고용하였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Jasmine의 슬픔은 끝날 줄 몰랐습니다. 가족으로부터 친구들과 동료들로부터 버림받고 병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ICT 네트워크의 문을 열다

 2002년, Jasmine는 루퍼스 환자 모임에서 처음으로 쌀람 와니타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ICT기술 교육과 에코바스켓 만들기 강의에 참석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임시직장에서도 함께 다녔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지만, 더 이상 혼자는 아닙니다.

 사실 그녀는 모든 생활의 기술적인 면에서 교육이 필요한 “My Fair Lady”의 Eliza Dolittle과 같았습니다. Jasmine은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각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냈습니다. 가장 소중한 성과는 Jasmine이 드디어 진정한 우정을 나눌 친구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배웠습니다. 제 자신의 자존감은 쌀람와니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높아집니다. 친구들은 저의 ‘Builder’입니다.’

 자존감 상승은 그녀가 난처한 일을 해결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휴대폰 사용법을 배울 때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녀는 기부 받은 휴대폰을 처음 사용했을 때 바닥에 떨어뜨려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전화를 받는 것부터 시작하여 휴대폰을 통하여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휴대폰은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Jasmine는 집세와 식비를 벌기 위해 쌀람와니타 프로젝트와 다른 회사의 임시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녀의 업무 일정이 정확히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휴대폰을 통해 근무시간, 장소, 임금 등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데에도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역량강화


그녀가 새롭게 얻은 자신감으로 위험을 극복할 정도의 추진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또 새로운 도전으로 컴퓨터를 배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본적인 IT 소프트웨어를 배우고 나자 그녀는 더욱 열정을 갖고 일에 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석 달간의 IT 학습을 통해 문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익혀 팀워크에도 이바지하였습니다. 타이핑 테스트를 마치고 나자 그녀에게 컴퓨터가 한 대 기부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친구들과 이메일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eHomemakers 웹사이트 포럼에도 적극적인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ICT는 신체적, 정신적 장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Jasmine의 정신적, 감정적 장애를 극복한 스토리는 친구들과 쌀람와니타 프로젝트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Kanesgawary' Profile


Kanesgawary의 시작

그녀가 살고 있는 집 바닥은 온통 움푹 패여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들 그 흔적은 절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녀 주위의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우울하게만 보일 뿐입니다. 집안일,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 요리, 청소 등의 일은 끝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뇌성 마비를 앓고 있는 두 아이를 돌보는 막중한 책임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만 합니다.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Kanesgawary는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매일같이 죄책감과 힘든 삶에서 싸워야 했고 감정을 다스리며 울어야 했습니다. 남편은 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웠고, 꾸준한 수입도 없었습니다. 본인 스스로 먹을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없는 아이들을 두고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비워야 했습니다. Kanesgawary의 자신감은 완전히 땅에 떨어져버렸습니다.

집에서 일하기 : ICT로 어떻게 가능했을까?


 2003년 Kanegawary는 친구로부터 쌀람와니타 프로젝트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녀는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기술, 에코바스켓 만들기, 핸드폰 사용법, 개인 재정관리 등을 배우고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배우면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두 아이들을 남겨두고 집을 비우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휴대폰을 통하여 집에서도 작업 스케줄과 주문을 받았고, 아이들을 보살피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동료인 에코바스켓 디자이너, 바이어, 잡지 기부자들과 소통하며 이젠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Kanesgawary의 경제적 안정성과 삶의 질은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장애 아이를 돌보는 방법, 에코바스켓을 만들기 위해 잡지를 기부 받을 기부처 등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심리 치료 세미나를 통해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의 높아진 자존감은 예술적 창의성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 이상 우울하거나 절망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세탁물 수거함 바스켓을 개발한 것 외에도, 다양한 에코바스켓 기술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에코바스켓은 예술작품에 가깝습니다. 사실 그녀는 이러한 에코바스켓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디자이너입니다. 무엇이 아름다운 바스켓을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합니다. ‘인생에서 지금처럼 행복한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롭고 특별한 것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금 제 인생처럼 말이죠.’ 그녀의 바스켓은 하나의 인생을 담고 있는 예술 작품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처음에는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 어색해 했지만, 그녀가 에코바스켓으로 버는 수입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로 그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아내의 미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그녀와 가사를 분담하고 있습니다.


역량개발

 2002년 전에 그녀를 본 사람들은 현재 그녀의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지난 4년동안 그녀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활기차게 이야기하고, 에코바스켓 디자인에 대해 열정적으로 할동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Kanesgawary는 이제 깔끔하게 정돈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바닥의 움푹 파여진 구멍들도 모두 수리하였고, 남편도 아내의 일을 인정한 후 에코바스켓을 운반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Manika' Profile

 Manika Rumah는 Selango의 Rumah Papan(지역명) 의 편모 여성입니다. 1년 전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남편의 사택에서도 떠나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Manika는 가구 가게에서 한 달1000링깃(약 39만원)을 버는 23살 아들과 지낼 400링깃(약 15만원)짜리 월셋방을 구하고 나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쌀람와니타 프로젝트는 집에서 일하며 돈을 벌며 생활비 마련에 보탬이 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녀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여전히 가난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녀는 에코바스켓을 통해서 아들에게 더 나은 삶을 부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May Lee' Profile


  May Lee는 무척 성실한 에코바스켓 디자이너입니다. 16명의 형제를 가진 그녀는 집안 형편상 정규 교육을 마칠 기회를 갖지 못했고 14세 때부터 고무 수선공, 식당의 웨이터로 일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각각 한 명씩 낳았습니다. 그러나 10 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두 아이와 함께 가장이 되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May는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우울증이 완전히 치료되진 않았지만 May는 아이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을 기꺼이 부담하였습니다. 아침에는 국수를 팔고, 오후에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저녁 늦게까지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생활했습니다.

  쌀람와니타 프로젝트팀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터닝포인트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제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재택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Rajeshwari' Profile


Rageshwari는 Selangor, Rawang(지역)에 사는 52세의 두 아이 어머니입니다. 저임금 노동자로 두 아이를 키우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Rageshwari는 5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음식이나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 할정도의 충분한 돈을 벌기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관절염, 당뇨, 위염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기초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돈을 버는 것이 지금 그녀의 가장 큰 꿈입니다.





Soo Yoke Cheng' Profile


  결혼 후 Yoke Cheng은 가사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세 아이의 편모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Yoke Cheng은 그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해야 했습니다.

기혼여성인 Yoke Cheng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습니다. 살아생전 그녀의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했고 휴대폰을 갖고 있었고,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Yoke Cheng은 특별한 기술도 가족의 지원도 친구나 지인 없이 가족을 부양해야 했습니다.


  이웃에 사는 에코바스켓 디자이너인 Foong Yee는 그녀에게 쌀람와니타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자르기, 말기, 직조부터 시작하여 점차 어려운 단계의 에코바스켓을 만드는 기술을 익혀나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녀의 삶의 변화로도 이어졌습니다.

  에코바스켓을 만드는 현재도 Yoke Cheng은 아직 편모로서 가족을 부양하고 살아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들은 그녀의 강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에 동기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종이를 자르는 것을 배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단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가사와 함께 에코바스켓을 만들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만족을 느끼고 일을 즐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Yoke Cheng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친구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Yoke Cheng의 이야기 중 가장 특별한 부분은 힘겨운 상황을 이겨냈다는 것일 겁니다. 그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을 모두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습니다. Yoke Cheng이 남편이 떠난 후 직면하게 된 두려움과 고난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녀의 세 아이들을 훌륭히 길러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에코바스켓을 통해서 친구를 만났으며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되었고, 가장 중요한 희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Tan Thai' Profile

 Tan Thai는 활기찬 성격의 여성입니다. 그녀의 늘 웃는 인상 덕분에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심지어 그녀를 처음 만났을 지라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쿠알라룸푸르의 에코바스켓 디자이너 사이에서 ‘이모 (auntie)’라고 불립니다.

  그녀는 처음 에코바스켓을 만드는 법을 배웠을 때부터 매우 뛰어난 수재였습니다. 단순이 바구니를 만드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Foong Yee를 비롯한 다른 디자이너들을 가르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가 Foong Yee의 팀에 참여하게 된 것은 큰 기회이자 선물이었습니다. 그녀는 당뇨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손을 베이지 않게 조심해야 했습니다.

  즉, 에코바스켓 골격에 필요한 철사를 자르는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녀는 팀원으로서 일했기에 철사를 자르지 않아도 됐습니다.

  쌀람와니타 프로젝트를 통해 Tan Thai가 얻은 소중한 것은 다른 친구들과의 우정이었습니다. 그녀의 딸은 도시 중심부에서 일하고 있기에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녀는 쌀람와니타 프로젝트를 통해 자존감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Toh Oy Sim' Profile


  Toy Oy Sim은 막중한 병원비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녀는 14년간 고통스러운 신장결석을 앓아왔습니다. 신장결석은 등과 아랫배 등에 매우 격렬한 통증을 유발하는 질병입니다. 심지어 메스꺼움과 구토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녀의 몸은 신장결석으로 인하여 매우 쇠약해졌고, 치료를 받았지만 오랜 시간 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였습니다.


  그녀는 일주일에 세 번씩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신장결석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합니다. 치료뿐만 아니라, 세 달에 한번 혈관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가야 합니다. 그녀에게 이런 의료비는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됩니다.

  심지어 Toh Oy Sim은 신장결석 치료의 부작용으로 폐 질환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정부 지원 병원에 다녔지만 폐 질환으로 인해 더 이상 정부지원 병원에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병원비는 계속 올라 더 이상 치료를 받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도 신장결석으로 진단 받았고, 수술을 위해서는 6000링깃 (한화 약 210만원)에 다다르는 금액이 필요합니다.

  그녀의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매우 벅찹니다. 우기에는 수입이 전혀 없습니다. 트럭 운전사인 남편이 건강했을때에도 그는 충분한 식비조차 충당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보다 어려운 친척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한 그녀에게 에코바스켓은 좋은 기회였습니다. 다양한 직업에 종사해왔지만 안정적이고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한 직업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쌀람와니타 프로젝트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건강이 좋지 않은 몸 상태에 맞추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 중의 하나입니다.

Foong Yee' Profile


Foong Yee의 시작

Foong Yee는 쿠알라룸푸르 외곽의 낡은 집에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비정기적인 수리공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잦았습니다. 빠듯한 생활비로 세 명의 아이들을 키워야 했습니다. 그녀는 한번도 기초 교육이나 기술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평생을 가정주부로 살아왔습니다.

  또한 자기 발전을 위한 기회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웃이자 쌀람와니타 프로젝트의 일원이었던 Tan Thai를 통해 자기 발전의 기회를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주문이 없어서 다른 디자이너들이 포기할 때 그녀는 새로운 에코바스켓 만들기 기술과 디자인을 연구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쌀람와니타 프로젝트를 통해 그녀에게 꿈과 목표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그녀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휴대폰, 리더가 되다

Foong Yee는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며 다른 여성들의 업무를 분배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예술적 감각으로 에코바스켓 만드는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녀는 꾸준히 새로운 디자인, 색상, 패턴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4년간, 팀에서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가 되어 다른 디자이너들에게도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그 결과 그녀의 팀원들은 새로운 에코바스켓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팀원 중 세 명이 그녀의 이웃이기 때문에 함께 쇼핑몰 등을 다니며 색감의 조화와 패턴에 대해 함께 연구 할 수 있었습니다. 자주 Foong Yee의 집에 모여 바스켓의 품질 향상과 새로운 디자인 등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녀들은 이미 팀에서 특성화된 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Foong Yee의 아이디어로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혁신적인 사고 덕분에 가장 뛰어난 팀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팀원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다른 팀원과의 역할과 일정을 조정하는 등의 팀웍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주문을 받을 때, 기간을 맞추기 위하여 팀원들의 역할과 일정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생산량과 일정을 조정하기 위한 소통도구로 휴대폰을 사용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휴대폰을 통해 마감일정, 배달일정등을 조절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배웠습니다. Klang Valley는 대중 교통이 낙후되어 운송료가 매우 높은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직접 에코바스켓을 배송하기 위해 운전을 배워야 했습니다. 휴대폰을 사용한 커뮤니케이션은 직접 만나서 소통하는 것에 비해 비용 절감 효과를 낳았습니다.

역량강화 

그녀의 팀은 색상, 형태, 제작법 등 새로운 디자인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일하며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팀원들은 이제 모두가 소중한 친구들이 되었으며 귀중한 경험을 얻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서로를 도울 수 있기에 소중하다.’

  Foong Yee는 성공한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녀 특유의 기술을 향상시켰고, 팀의 리더로서 팀원들에게 존경 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색상조화에 관해 생각할 때에 환하게 빛납니다. 언젠가는 에코바스켓을 나아가서 그녀만의 새로운 예술품을 창조하게 될 거라 기대합니다.



Norarita's Profile


Norarita의 시작

 2002년, Norarita는 아이들을 보살피는데 모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 명의 아이들은 뇌성 마비를 앓고, 한 명은 신경이 마비되어 언어를 구사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수도에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이포’ 에서 도움을 구할 만한 곳은 없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고립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심지어 제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악화된 환경을 극복하려 스스로 아이들의 병원비를 벌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이포에서 쌀람와니타 프로젝트의 일원인 Sue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에코바스켓은 저 같이 인생이 끝났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라고 회상합니다.


휴대폰, 네트워크, 앙트러프러너(사회적 창업가)가 되다

5년 후, Norarita는 자기계발을 넘어서 이포 지역의 바스켓 디자이너 사이에서 리더가 되었습니다. 컴퓨터 교육, 바스켓 만들기, 재정 관리 세미나를 통해 타인에게 삶의 활력을 되찾아주며 본인의 자신감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리더가 되기 전까지 대학졸업장을 가진 변호사의 아내인 Sue와 같이 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고객들을 위해 에코바스켓을 만드는 것 외에도 중국인, 말레이인, 인도인 등을 어떻게 구성하여 진정한 다민족 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이포 지역 CSR 마케팅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바구니라고 홍보하기보다 우리 에코바스켓은 친환경적이고 소외된 이들을 도울 수 있다고 전합니다.

그녀는 마케팅, 고객관리, 팀원 관리 등을 휴대폰의 SMS기능과 같은 기본적인 ICT솔루션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ICT활동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제 그녀 주위의 정보를 필요한 자원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를 통해 추가수입을 얻고, 앙트러프리너(사회적 창업가)로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휴대폰 사용에 대한 가치를 배우면서 인터넷사용방법과 이메일 사용법을 배우게 되습니다. 그녀는 ICT가 그녀의 삶을 가치 있게 바꾸어 놓았다고 말합니다.


역량강화

그녀는 현재 이포에서 이사하여 근처 Taiping 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동료들과 고객들을 만나기 위해 이포를 방문합니다. 다른 지역으로 갈때는 통행료와 주유비를 부담해야 해야 하는데, 이제 그녀는 스스로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워 번 돈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으며, 인생의 낭떠러지까지 갔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에게 한 줄기의 희망이 되길 바란다며 기부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엄마로서 매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두 아이들과 함께 살 집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습니다.’ 노라리타는 희망 가득 찬 눈으로 웃으며 말했습니다.